세리에 A의 전통적인 강자 중 하나인 AC 밀란은 별 하나를 보유한 팀이다.
유벤투스, 인테르, AC 밀란 순으로 우승 횟수가 많으며, 특히 인테르와는 매년 치열한 밀라노 더비를 펼치고 있다.
별명은 로쏘네리 빨강 검정이다.
자세하게 이 팀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우승 기록
Scudetto 1901
AC 밀란은 클럽 창립 2년이 채 되지 않아 첫 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Squad
David Allison
Daniele Angeloni
Guerriero Colombo
Samuel Richard Davies
Edward Dikinson Dobbie
Catullo Gadda
Hoberlin Hood
Herbert Kilpin
Kurt Lies
Ettore Negretti
Penvhyn Llewellyn Neville
Agostino Recalcati
Hans Suter
Louis Wagner
Herbert Kilpin Coach
로쏘네리, 허버트 킬핀에 의해 창립되고 설립된 AC 밀란은 마침내 세기 초에 이탈리아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게 되었다. 이것은 모험의 시작이었다. 그 당시에는 팬들이 경기장을 지켜보았고 골대에는 그물이 없었다. 심지어 AC 밀란과 메디올라눔의 첫 번째 밀라노 더비가 정말 리그 경기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것이 친선 경기가 아니었나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AC 밀란은 반준결승에서 유벤투스와 만났다. 유벤투스는 체육진흥회 토리노를 꺾고 진출한 팀이었다.
메디올라눔과의 2-0 승리 후, 로쏘네리 선수들은 '이용할 수 없었다' (분명히 다른 일이 있거나 교통 문제 때문이었다)며 토리노에서 유벤투스와의 반준결승 경기를 치를 수 없었고, 경기는 1901년 4월 21일부터 4월 28일로 연기되었다. 토리노 출신의 나시는 주심을 맡았고, AC 밀란은 두 번 뒤집혀 1-0에서 2-1로 뒤지다가 Herbert Kilpin의 결정적인 골로 3-2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에서 제노아와 맞붙을 시간이 다가왔다. 수년간 기록에는 AC 밀란이 제노아에서 1-0으로 이겼다고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1901년 5월 5일의 결과는 3-0으로 로쏘네리의 승리였다. 당시에는 '트리콜로레' 스쿠데토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AC 밀란은 이탈리아 챔피언이었다.
Scudetto 1906
1901년 우승에 이어, AC 밀란은 다시 한 번 이탈리아 챔피언이 되다.
Squad
Alfred Bosshard
Attilio Colombo
Guerriero Colombo
Oscar J. Giger
Hans M. Heuberger
Herbert Kilpin
Francois Menno Knoote
Umberto Malvano
Andrea Meschia
Guido Moda
Guido Pedroni
Giuseppe Rizzi
Antonio Sala
Alessandro Trerè
Attilio Trerè
Daniele Angeloni Coach
이 시점에서 골문에는 드디어 그물이 설치되었고, 이 중요한 추가 장치와 함께 AC 밀란은 1914년까지 로쏘네리들이 경기를 펼칠 포르타 몬포르테 경기장을 개장했다. 자택에서 4-3으로 승리한 AC 밀란은 코마시나에서 U.S. 밀라네세를 상대로 2-1로 승리했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심판의 실수가 있었지만, 밀라네세는 경기장에서의 판정을 받아들였고 항의하지 않았다. 챔피언을 결정하는 마지막 단계는 AC 밀란, 유벤투스, 제노아 사이에서 치러졌다.
그러나 사실상 이는 AC 밀란과 유벤투스 간의 대결이었다. 왜냐하면, 스펜슬리 감독의 제노아 팀은 그 시즌에 급격히 하락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AC 밀란과 유벤투스 간의 모든 것이 결정적인 상황이었다: 유벤투스는 토리노에서 2-1로 승리했고, AC 밀란은 포르타 몬포르테에서 1-0으로 승리했다. 플레이오프가 필요했다: 토리노의 벨로드로모 움베르토 I에서 0-0 무승부. 연맹은 밀라노에서 다시 경기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유벤투스는 항의하며 경기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로쏘네리들이 챔피언에 등극했다.
Scudetto 1907
AC 밀란은 두 번째 연속, 그리고 클럽 역사상 세 번째 스쿠데토를 차지했다.
Squad
Alfred Bosshard
Attilio Colombo
Gustav Hauser
Hans Walter Imhoff
Herbert Kilpin
Johann Ferdinand Madler
Andrea Meschia
Guido Moda
Camillo Parisini
Vittorio Pedroni
Gian Guido Piazza
Gerolamo Radice
Alessandro Trerè
Attilio Trerè
Ernst Widmer
Daniele Angeloni Coach
이번에는 논란 없이, AC 밀란은 토리노와 안드레아 도리아와의 이탈리아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경기를 승리로 마무리하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로쏘네리가가 1908년에 스펜슬리 컵을 수여받았다. 그들은 첫 번째 레그에서 6-0으로 US 밀라네제를 쉽게 이기고, 두 번째 레그에서도 1-0으로 승리하며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당시 감독은 다니엘레 안젤로니였으며, 그는 비서와 감독직도 동시에 맡고 있었다.
결승 진출을 결정짓게 된 것은 안드레아 도리아와 토리노의 무승부였다. 그 결과로 토리노와 두 차례 무승부를 기록하고, 밀라노에서 안드레아 도리아를 이기면 로쏘네리는 1907년 4월 7일에 이탈리아 타이틀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그들은 트레레와 마들러의 골 덕분에 2-0으로 승리하며 목표를 달성했다. 그 시즌 동안 AC 밀란은 여섯 번째로 '팔라 다플레스'라는 매우 귀중한 트로피를 획득했다.
Scudetto 1950/51
로쏘네리가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이탈리아 챔피언이 되다.
Squad
Carlo Annovazzi
Carlo Alfonso Belloni
Andrea Bonomi
Lorenzo Buffon
Renzo Burini
Luciano Carnier
Benigno De Grandi
Mario Foglia
Gunnar Gren
Nils Liedholm
Gunnar Nordahl
Mario Renosto
Giovanni Rossetti
Aurelio Santagostino
Arturo Silvestri
Omero Tognon
Albano Vicariotto
Lajos Czeizler Coach
1907-1951: 긴 기다림의 시간. 그러나 1901년 제노아와의 첫 번째 이탈리아 타이틀을 획득한 지 50년 만에, AC 밀란은 다시 이탈리아 챔피언이 되었다. 그것은 그레노리(그레누올리)의 두 번째 해였고, 첫 번째 시즌에서는 1950년 2월 유벤투스 원정에서 7-1이라는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역사적인 성공은 위대한 자전거 선수 파우스토 코피에게서도 큰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 시즌 팀은 매우 공격적이었고 항상 균형이 잘 맞지 않아 AC 밀란은 2위로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수비 보강이 필요했고, 그것은 1950년 여름에 풀백 실베스트리와 레노스토의 영입으로 해결되었다. 부시니와 체이슬러가 이끄는 AC 밀란은 마침내 44년 만에 스쿠데토를 획득했다. 그들은 1951년 6월 10일 일요일, 산 시로에서 2-1로 라치오에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밀란도 패배했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타이틀을 확정지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긴장된 기다림이 계속되었고, 그 후 드디어 경기장 스피커에서 "토리노가... 이겼습니다"라는 발표가 나왔고,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 해, AC 밀란은 산 시로에서 열린 코파 라티나 결승에서 릴을 5-0으로 이기며 또 다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Scudetto 1954/55
노르달, 득점왕에 올라 AC 밀란, 다시 한 번 이탈리아 챔피언 등극
Squad
Eros Beraldo
Mario Bergamaschi
Lorenzo Buffon
Alfio Fontana
Amleto Frignani
Nils Liedholm
Cesare Maldini
Gunnar Nordahl
Franco Pedroni
Eduardo Ricagni
Juan Alberto Schiaffino
Arturo Silvestri
Jørgen Leschly Sørensen
Omero Tognon
Riccardo Toros
Valentino Valli
Albano Vicariotto
Sandro Vitali
Francesco Zagatti
Héctor Puricelli Coach
안드레아 리졸리는 40세가 될 즈음 AC 밀란의 회장이 되었다. 유명한 출판업자 앙젤로의 아들인 그는 일찍이 큰 영입을 통해 자신을 알렸다. 그 영입은 스웨덴의 프로페서, 군나르 그렌을 대체하기 위한 것으로, 우루과이의 1950년 월드컵 챔피언인 후안 알베르토 시아피노였다. 그는 페냐롤에서 이적했으며, 페냐롤은 30세의 시아피노가 최고의 날들을 이미 지나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반대가 사실이었다. 시아피노는 36세까지 AC 밀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의 멋진 플레이와 부드러운 터치는 밀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시아피노와 리드홀름이 중원을 이끌고, ‘소방수’ 노르달은 득점왕에 오른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그는 27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하지만 1954년은 체사레 말디니와 에두아르도 리카니가 AC 밀란에 합류한 해이기도 하며, 노르달은 팀의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푸리첼리가 구트만을 대신해 밀란 감독으로 취임한 후, AC 밀란은 성공을 위한 완벽한 레시피를 찾았다. 로마에서 라치오를 4-2로, 유벤투스를 3-1로, 제노아를 마라시에서 8-0으로, 스팔을 6-0으로 이겼다. 이러한 승리 덕분에 스웨덴 스타 아르네 셀모손이 이끄는 우디네세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Scudetto 1956/57
AC 밀란, 불과 몇 년 만에 세 번째 스쿠데토 획득
Squad
Osvaldo Bagnoli
Gastone Bean
Eros Beraldo
Mario Bergamaschi
Per Bredesen
Lorenzo Buffon
Ernesto Cucchiaroni
Emiliano Farina
Alfio Giuseppe Fontana
Carlo Galli
Nils Liedholm
Cesare Maldini
Amos Mariani
Gianni Meanti
Luigi Radice
Cesare Reina
Eduardo Ricagni
Juan Alberto Schiaffino
Narciso Soldan
Francesco Zagatti
Luigi Zannier
Giuseppe Viani Coach
‘셰리프’ 지포 비아니(Gipo Viani)가 AC 밀란의 지휘봉을 잡았다. 여름에는 자니에르, 빈, 갈리, 솔단, 노르웨이의 브레데센, 아르헨티나의 쿠키아로니가 합류했다. 하지만 리그 시즌이 시작되었을 때, 모든 일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AC 밀란은 1956년 라틴컵에서 아틀레틱 빌바오를 결승에서 이기고 두 번째 라틴컵을 차지하며 좋은 출발을 했지만, 그 후 나폴리와 파도바와의 두 경기에서 연속으로 패하며 7골을 허용했다.
10월 21일의 밀라노 더비는 AC 밀란에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날 홈팀으로 경기를 치른 AC 밀란은 브레데센의 골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자존심을 지켰다. 그 이후, AC 밀란은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당시 이탈리아 챔피언이었던 피오렌티나를 3-0으로 이기며 큰 자신감을 얻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리그 선두로 올라섰다. 시즌의 나머지 기간 동안 비아니 감독의 팀은 압도적이었다. 특히 가스토네 빈은 AC 밀란의 스쿠데토 성공에 큰 기여를 하며 17골을 기록했다.
Scudetto 1958/59
AC 밀란은 피오렌티나, 인테르, 유벤투스를 제치고 리그 타이틀을 차지했다.
Squad
José Altafini
Giancarlo Bacci
Gastone Bean
Eros Beraldo
Lorenzo Buffon
Giancarlo Danova
Bruno Ducati
Paolo Ferrario
Alfio Giuseppe Fontana
Carlo Galli
Ernesto Grillo
Nils Liedholm
Cesare Maldini
Giancarlo Migliavacca
Vincenzo Occhetta
Luigi Radice
Sandro Cesare Salvadore
Juan Alberto Schiaffino
Narciso Soldan
Mario Trebbi
Francesco Zagatti
Luigi Bonizzoni Coach
1958년 스웨덴에서 열린 월드컵 이후 시즌이었다. AC 밀란의 스쿼드에는 월드컵 준우승자 닐스 리드홀름과 월드컵 챔피언 호세 알타피니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후자는 스톡홀름에서 열린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마쪼라’로 알려진 호세 알타피니는 빠르게 산시로의 아이돌이 될 모든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되었다. 보니조니와 비아니가 팀을 이끌었다. 보니조니는 지아니 리베라가 리나테에서 시련을 겪은 이야기를 유명하게 남겼다: "거리에서 우리는 슈아피노와 젊은 리베라를 구별할 수 없었다..."
팀의 수비는 주장 리드홀름이 견고하게 지켰고, 골키퍼 부폰, 풀백 폰타나와 자가티, 미드필드에서 마르디니와 오케타가 안정감을 주었으며, 플레이메이커 슈아피노와 함께 중원을 지켰다. 공격에는 다노바, 갈리, 알타피니, 그리고 그릴로가 있었다. AC 밀란은 피오렌티나와의 치열한 싸움 끝에 7번째 리그 타이틀을 차지했다. 27라운드에서 피오렌티나와의 3-1 승리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AC 밀란은 리그에서 총 84골을 기록했으며, 그 중 28골을 알타피니가 득점했다.
Scudetto 1961/62
로쏘네리의 8번째 스쿠데토 우승
Squad
Luciano Cesare Alfieri
José Altafini
Paolo Barison
Bruno Beretti
Oliviero Conti
Giancarlo Danova
Mario David
Emanuele Del Vecchio
Paolo Ferrario
Giorgio Ghezzi
Alcides Edgardo Ghiggia
James Peter Greaves
Mario Liberalato
Giovanni Lodetti
Cesare Maldini
Antonio Pasinato
Ambrogio Pelagalli
Gino Pivatelli
Luigi Radice
Gianni Rivera
Orlando Rozzoni
Sandro Cesare Salvadore
Dino Sani
Sergio Tenente
Giovanni Trapattoni
Mario Trebbi
Francesco Zagatti
Nereo Rocco Coach
지아니 리베라만이 1960년 하계 올림픽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의 중요한 선수는 아니었다. '파론' 로코도 그곳에 있었고, 그는 파도바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린 후 블라존, 모로, 아지니를 영입하여 팀을 강화했다. 파도바는 1957/58 시즌에 3위를 차지했으며, 이후 몇 년간 상위권을 유지했다. 이탈리아 올림픽 대표팀을 지도한 후 로코는 AC 밀란에 합류했다. 그는 선수로서의 경력 외에도 지방 감독으로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추진력과 선수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재능 있는 잉글랜드 출신의 지미 그리브스와의 협업은 순탄치 않았고, 전 첼시 선수인 그리브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디노 사니가 그를 대체했다. 사니의 영입은 AC 밀란의 리그 캠페인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했다. 시즌의 전반이 끝날 무렵, 로쏘네리는 인터 밀란, 볼로냐, 피오렌티나에 이어 4위에 있었으나, 시즌 후반 AC 밀란은 우승을 향해 질주했다. 그들은 가능한 34점 중 31점을 획득하며 환상적인 축구를 펼쳤고, 그 결과 알타피니는 22골을 기록하며 피오렌티나의 밀라니와 함께 득점왕에 올랐다.
Scudetto 1967/68
Nereo Rocco가 감독으로 이끈 두 번째 리그 우승
Squad
Antonio Angelillo
Angelo Anquilletti
Bruno Baveni
Pierangelo Belli
Fabio Cudicini
Massimo Giacomini
Lino Golin
Kurt Hamrin
Giovanni Lodetti
Saul Malatrasi
Bruno Mora
Pierino Prati
Gianni Rivera
Giorgio Rognoni
Roberto Rosato
Nello Santin
Nevio Scala
Karl-Heinz Schnellinger
Angelo Sormani
Giovanni Trapattoni
William Vecchi
Nereo Rocco Coach
Nereo Rocco는 하나씩 팀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그의 AC 밀란 복귀는 팬들의 열정을 다시 불태웠고, 그 이유는 분명했다: 두 번째로 그의 도착은 디아볼로의 스쿠데토 우승과 일치하게 되었다. 루이지가 세상을 떠난 후 클럽의 회장이 된 프랑코 카라로는 말라트라시, 함린, 쿠디치니 등 세 명의 선수를 영입하며 팀을 강화했다. 이 선수들이 나이가 많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엘 파론(El Paròn) 감독은 그런 이야기를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진행했다. 그는 로사토, 앙퀼레티, 트라파토니, 로데티, 슈넬링거, 그리고 리베라 등 훌륭한 선수들을 갖춘 강력한 팀을 이끌고 있었다. 또한 젊은 피에리노 프라티도 그의 신뢰를 받았다.
프라티는 그 믿음에 보답하며 리그에서 15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시즌 중반 AC 밀란은 21점으로 단 한 경기를 잃고 있었다. 시즌 후반, 로쏘네리들은 또 다른 차원으로 상승하며 25점을 획득, 나폴리와의 9점 차이를 벌렸다. 나폴리에는 조프, 줄리아노, 알타피니 같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90분에 프라티의 결승골로 2-1 승리를 거두며 중요한 승리를 따냈다. 여름에는 유럽 축구선수권 대회가 이탈리아에서 열리기 때문에 리그가 제시간에 끝나는 것이 중요했다. AC 밀란은 이 지침을 충실히 따르며 3월 31일에 일찍이 스쿠데토를 확정지었다.
Scudetto 1978/79
잊을 수 없는 10번째 스쿠데토 우승
Squad
Enrico Albertosi
Roberto Antonelli
Franco Baresi
Aldo Bet
Albertino Bigon
Simone Boldini
Ruben Buriani
Fabio Capello
Stefano Chiodi
Fulvio Collovati
Walter De Vecchi
Aldo Maldera
Alberto Minoia
Giorgio Morini
Walter Alfredo Novellino
Antonio Rigamonti
Gianni Rivera
Giovanni Sartori
Nils Liedholm Coach
1978/79 시즌 이후, AC 밀란은 세대교체가 필요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후, 투로네, 토셋토, 칼로니, 사바디니가 클럽을 떠났고, 노벨리노, 키오디, 데 벡키가 새롭게 합류했다. 닐스 리드홀름 감독은 젊은 프랑코 바레시에게 신뢰를 보내며, 그를 수비수 역할로 주전으로 기용했다.
시즌 초, 밀란은 Città di Milano 대회에서 플라멩고와 유벤투스를 각각 1-0, 4-2로 이기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리그가 시작되자, 리드홀름 감독은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하며 첫 5경기에서 10점 중 9점을 획득하는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시즌 6경기에서 유벤투스에게 패배하며, 타르델리가 경기를 시작한 지 몇 초 만에 리베라에게 악명 높은 반칙을 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란은 이를 극복하며, 훌륭한 경기력을 이어갔다. 전반기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고, 밀란은 겨울 챔피언으로 25점을 기록했다.
후반기에는 리베라의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팀의 평균 점수도 하락했다. 그러나 밀란은 더비에서 2-0으로 뒤진 상황에서 발터 데 벡키의 두 골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그리고 페루자와의 중요한 경기에서도 무승부를 거두어, 결국 보로냐에서 스쿠데토를 확정지었다.
마지막으로, 리베라가 산 시로 경기장에서 마이크를 들고, 팬들에게 위험한 구역에서 대기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장면은 역사에 남았다. 이 스쿠데토는 1979년 2월에 별을 달고 세상을 떠난 파론 로코에게 바쳐졌다.
나머지는 2편에서...
-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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