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70년 만에 EFL컵(카라바오컵)을 우승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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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알아보기
최근 70년 만에 EFL컵(카라바오컵) 우승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 대해서 알아보자 !! 1. 역사 (1881-1899) 타인사이드의 초기 축구 역사 오늘날 북동부 지역은 축구와 떼려야 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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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조금 더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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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사 (1992-1998)
킹 케브의 귀환
케빈 키건은 지난 7년 동안 스페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단 인수를 앞두고 있던 존 홀 경이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감독직을 제안하자, 타인사이드로 돌아오라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당시 뉴캐슬은 거의 파산 상태였고, 2부 리그에서 강등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한 번도 3부 리그로 떨어진 적이 없는 팀이었기에 상황은 더욱 절박했다. 게다가 세인트 제임스 파크도 방치된 상태였다. 뉴캐슬은 창단 100주년을 맞아 구세주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키건이 돌아오자 팬들은 열광했다. 선수 시절 처음 뉴캐슬에 도착했을 때처럼, 그의 존재 자체가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 효과는 선수들에게도 미쳐, 팀은 시즌 최종전에서 간신히 강등을 면했다.

'엔터테이너'의 탄생
2부 리그에서 20위를 기록했던 뉴캐슬은 키건과 존 홀 경이 손을 맞잡으면서 놀라운 반전을 만들어냈다. 1992/93 시즌을 시작하자마자 무려 11연승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시즌 막바지에는 브리스톨 시티에서 떠오르는 신예 공격수 앤디 콜이 합류했고, 스티브 하위, 리 클라크, 존 베레스퍼드, 롭 리, 그리고 고(故) 파벨 스르니체크와 같은 선수들이 이후 뉴캐슬의 핵심이 되었다.
뉴캐슬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레스터 시티를 7-1로 대파하며 극적으로 1부 리그 승격을 확정지었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2년 차에 합류한 뉴캐슬은 키건의 지휘 아래 전력을 보강했고, 첫 시즌을 리그 3위로 마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게다가 뉴캐슬은 아름다운 축구를 구사했다. 유기적인 공격 전개, 날카로운 패스 플레이, 그리고 화려한 측면 돌파가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였다. 1995년 여름, 팀의 화력을 더욱 보강하기 위해 레스 퍼디난드와 다비드 지놀라가 영입되었다.
오버래핑이 뛰어난 풀백 워런 바튼이 합류했고, 피터 비어즐리가 친정팀으로 돌아왔으며, 필리프 알베르와 대런 피콕이 수비진을 강화했다. 이처럼 화끈한 공격 축구를 선보인 뉴캐슬은 단숨에 '엔터테이너'라는 별칭을 얻으며, 대부분의 축구 팬들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팀이 되었다.

손끝까지 닿았던 우승
무엇보다도 뉴캐슬은 팬들에게 짜릿한 축구를 선사하고 있었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재개발이 진행 중이었고, 시즌권 대기자가 줄을 섰으며, 팀은 다시 유럽 대항전에 나서게 됐다.
그리고 1995/96 시즌, 뉴캐슬은 프리미어리그 우승까지 정말 가까이 다가갔다. 1996년 1월, 뉴캐슬은 리그 선두를 질주하며 2위와의 승점 차를 12점까지 벌렸다. 하지만 이후 경기력이 흔들리는 사이, 알렉스 퍼거슨(훗날 '경' 칭호를 받음)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거침없는 상승세를 타며 점차 격차를 줄였고, 결국 키건의 팀은 2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특히 안필드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4-3 패배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회자되며, 시즌 향방을 가른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또한, 블랙번전에서 후반 막판 조디 출신인 그레이엄 펜튼에게 연속 골을 허용하며 2-1로 패한 것도 뼈아팠다.
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한 골 차 승리를 연이어 따내며 승점을 쌓아 올렸고, 결국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시어러, 고향으로 돌아오다
뉴캐슬은 좌절을 딛고 반격에 나섰다. 블랙번 로버스에서 지역 출신 영웅 앨런 시어러를 영입하며 세계 이적료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그의 영입에는 무려 1,500만 파운드가 들었지만, 이는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였다.
이듬해 시즌 도중 키건은 팀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선물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5-0으로 대파한 경기였다. 특히 필리프 알베르가 피터 슈마이켈을 넘기는 감각적인 칩슛으로 득점을 완성한 장면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키건이 떠난 후, 케니 달글리시가 지휘봉을 잡았고, 뉴캐슬은 다시 한 번 리그 2위를 기록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냈다. 달글리시는 보다 신중한 전술을 도입했지만, 뉴캐슬은 여전히 마법 같은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1997년 9월,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파우스티노 아스프리야의 해트트릭을 앞세워 바르셀로나를 3-2로 격파하며 또 하나의 전설적인 승리를 거뒀다. 또한, 달글리시는 뉴캐슬을 22년 만에 FA컵 결승으로 이끌었지만, 1998년 웸블리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아스널에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섹시한 축구?
뉴캐슬의 다음 감독은 또 다른 거물급 인사, 루드 굴리트였다. AC 밀란의 전설적인 스타였던 그는 타인사이드에 "섹시한 축구"를 가져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굴리트는 뉴캐슬을 또다시 FA컵 결승으로 이끌었지만, 이번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맨유는 이 우승을 발판 삼아 전무후무한 트레블(리그, FA컵, 챔피언스리그 동시 석권)을 달성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굴리트가 기대했던 것만큼 매력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1998/99 시즌을 13위로 마쳤고, 이듬해 시즌 초반에는 주축 선수들과의 공개적인 불화까지 겹치면서 1999/00 시즌이 시작된 지 단 5경기 만에 뉴캐슬은 또다시 감독 교체를 맞이하게 되었다.
6. 역사(1999-2004)

북동부의 아들이 빗속에서 지켜본 경기
처음 팀 명단을 본 사람들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앨런 시어러와 던컨 퍼거슨이 벤치에 있었고, 경험이 부족한 신예 폴 로빈슨이 최전방에 선발 출전한 것이다. 상대는 뉴캐슬의 숙적, 선덜랜드였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루드 굴리트가 내린 결정이었고, 이는 결국 그의 뉴캐슬 감독 경력에 마침표를 찍게 만들었다.
그해 8월,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는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뉴캐슬은 1-2로 패배했다. 시즌 초반부터 부진했던 뉴캐슬에게 라이벌전 패배는 결정타가 되었다.
결국 시즌이 시작된 지 5경기 만에 굴리트는 사임했고, 당시 뉴캐슬은 리그 최하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단 1년하고 하루 동안만 팀을 지휘한 채 떠나게 되었다.

롭슨의 귀환
그때 그는 ‘경(Sir)’이 아니었다. 기사 작위는 2002년에 받았지만, 바비 롭슨은 이미 축구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었어. 입스위치에서 UEFA컵과 FA컵을 들어 올렸고, 바르셀로나, 포르투, PSV 아인트호벤에서 리그와 컵 대회를 석권했으며, 1990년 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를 4강까지 이끌었지. 게다가 그는 카운티 더럼에서 태어나 자랐고, 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찾았던 뉴캐슬의 아들이기도 했어.
롭슨의 부임 소식만으로도 팬들은 기대감을 품었지만, 그의 첫 경기는 그 기대를 완전히 폭발시켰어. 세필드 웬즈데이를 상대로 뉴캐슬은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무려 8-0 대승을 거뒀고, 되살아난 앨런 시어러가 홀로 다섯 골을 몰아쳤지.
뉴캐슬은 다시 정상 궤도에 올랐고, 강등권에서 멀리 벗어나 FA컵 4강까지 진출했어. 하지만 웸블리에서 첼시를 만나 아쉽게 패배하며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
2000/01 시즌 개막전에서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배했지만, 그다음 경기에서 뉴캐슬은 재개발을 마친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51,327명의 관중 앞에서 더비 카운티를 맞이했어. 이는 1976년 2월 이후 가장 많은 관중 수였지. 이날 경기에서 칼 코트와 다니엘 코도네가 홈 데뷔전에서 나란히 골을 기록했고, 이후 2연승을 추가하며 뉴캐슬은 리그 선두에 올랐어.
하지만 곧 앨런 시어러의 부상이 뉴캐슬에게 치명타가 되었어. 그의 골이 빠진 뉴캐슬은 시즌 초반의 기세를 이어 가지 못했고, 결국 칼 코트가 단 6골로 팀 내 리그 최다 득점자가 되는 처참한 시즌이 되었지. 비록 시즌 성적은 다소 실망스러웠고, 뉴캐슬은 중위권에 머물렀지만, 팬들은 롭슨이 팀을 재건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어.

챔피언스리그 시절
2001-02 시즌은 7월 14일, 인터토토컵 출전과 함께 일찍 시작됐다. 그리고 그 시즌은 뉴캐슬에게 아주 특별한 한 해가 됐다.
첼시와의 개막전 무승부 이후, 뉴캐슬은 선덜랜드와 미들즈브러를 상대로 더비 승리를 거뒀다. 12월에는 블랙번, 아스널, 리즈를 차례로 꺾으며 크리스마스를 리그 선두로 맞이했다. 결국 시즌을 4위로 마무리하면서 1996-97 시즌 이후 최고 순위를 기록했고,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냈다.
하지만 조별리그 초반은 최악이었다. 첫 세 경기에서 전패하며 승점 0점으로 탈락 위기에 몰렸다. 그전까지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조별리그 첫 세 경기를 패한 팀이 16강에 진출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뉴캐슬은 이를 뒤집었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유벤투스를 1-0으로 꺾고, 디나모 키예프를 2-1로 이기며 희망을 되살렸다. 그리고 운명의 경기, 페예노르트전에서 크레이그 벨라미가 경기 종료 직전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리며 뉴캐슬은 기적적으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그 후 레버쿠젠을 상대로 홈·원정 2연승을 거두고, 인터 밀란 원정에서도 2-2로 비겼지만, 결국 8강에는 인터 밀란과 바르셀로나가 올라갔다. 비록 탈락했지만, 뉴캐슬은 챔피언스리그에서 역사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UEFA컵 4강
하지만 뉴캐슬은 리그에서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3위로 마무리했다.
다음 여름에 영입된 선수는 리 보이어가 유일했고, 파르티잔 벨그라드에게 챔피언스리그에서 일찍 탈락한 것은 아쉬웠지만, 리그 성적은 여전히 좋았고, UEFA컵으로 강등된 것이 위안이 됐다.
PSV 아인트호벤을 8강에서 이기고 마르세유와 4강에서 맞붙게 됐다. 그러나 첫 번째 다리에서 득점 없이 무승부를 기록한 후, 디디에 드로그바가 프랑스에서 두 골을 넣으며 뉴캐슬은 결승 진출을 놓쳤다.
결국 뉴캐슬은 리그에서 5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이 성적과 2004/05 시즌 초반의 부진한 시작은 프레디 셰퍼드 회장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고, 2004년 8월 30일, 바비 롭슨 감독은 경질됐다.

바비 롭슨의 유산
그가 사랑한 클럽에서의 시간은 슬프게 끝났지만, 바비 롭슨 경은 갈로게이트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그는 2009년 사망하기 며칠 전, 2008년에 창립한 **Sir Bobby Robson Foundation**을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한 경기에서 마지막 공개적인 모습을 보였다.
뉴캐슬은 여전히 그 자선단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세인트 제임스 파크 밖에는 바비 롭슨 경의 동상이 세워져 뉴캐슬 유나이티드 팬들이 다음 세대에 걸쳐 그를 기억하고 존경할 수 있도록 했다.
7. 스폰서

- 참고
https://www.newcastleunit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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